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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 November 21, 2012 | view 10,384
5. 근대시계의 꽃 회중시계 
 
회중시계는 기계시계의 발전과 시계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 탄생하여 약 400년 동안 인류의 사랑을 받았었다.
 
1480년 독일의 남부지방인 뉘른베르크(Nurnburg)에서 페터 헨라인(Peter Henlein)에 의하여 태엽이 만들어지자 독일인들에 의하여 시계가 소형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회중시계로는 독일의 부페르탈 시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카스파어 베르너가 만든 회중시계가 있다.
 
이 시계는 제작연대가 적혀 있는 회중시계로는 가장 오래된(1548년) 시계이다. 한번의 태엽감기로 30시간이 작동되며 태엽의 추진력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균력( 均力 ) 체인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이 시계는 적어도 하루에 20분 이상의 오차가 있을 정도로 성능이 좋지 않았으나, 당시의 기술로는 수준급의 시계였다. 재료는 놋쇠에 금도금을 하였으며 시계에 유리가 사용되지 않을 때이었으므로 문자판이 비쳐 보이는 뚜껑이 케이스에 달려 있다.
 
이 시계 역시 시침만 작동하고 있으며, 밤에도 시간을 알 수 있도록 문자판 옆에 작은 돌기가 시침과 함께 회전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만져보면 시간을 알 수 있다.
 
[사진 1] 카스파어 베르너의 회중시계이다. 기계전체는 철(Fe)로 만들어 졌으며 케이스는 놋쇠에 금도금을 하였다.
그러나 최초의 회중시계는 역시 태엽을 발명한 페터 헨라인이다. 그는 본래부터 뉘른베르크의 시민이 아닌 것 같다. 기록에 의하면 페터 헨라인은 1509년 시계를 제작하는 직종의 직능장(Master Watchmaker)이 되었으며 1526년에 뉘른베르크의 시민권을 얻었다는 기록을 보면 뉘른베르크의 출생은 아닌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실물의 시계인 카스파어 베르너의 시계에 제작 년도가 각인되어 있으므로 베르너의 시계가 실존하는 회중시계 중에 연도가 기록된 시계 중 가장 오래된 회중시계로 인정되고 있다. [사진 1]의 시계는 카스파어 베르너의 시계이다.
 
베르너 역시 페터 헨라인과 동시대의 사람이며, 베르너의 시계도 독일 회중시계 제작의 통례에 따라 철(Fe)로만 무브먼트가 제작이 되어있다. 그러나 무브먼트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인 탈진장치를 확인할 수 없었으며, 철제 부품의 부식상태가 심하여 지금도 작동이 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사진 2]의 시계는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1700년 경에 영국에서 제작된 회중시계이다. 기계와 문자판의 기록을 보면 스코틀랜드의 소작농 집단의 우두머리(감독)가 사용한 시계인 것 같다.
 
[사진 2]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1683년 영국에서 제작된 회중시계이며, 스코틀랜드의 소작농 우두머리를 위하여 만들어진 시계이다. 크기는 지름 570mm, 높이 295mm이다.
크로프트헤드(Crofthead)란 뜻은 소작농민들의 우두머리란 뜻이니 그가 직접 주문하여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대지주인 귀족이 선물을 한 것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으나, 웨-델(Waddell) 이라는 시계 제작자에게 주문한 수제품 회중시계이다.
 
당시의 신분과 부의 상징이었던 고급시계를 더구나 주문 제작한 수제품의 시계를 소작농민들의 감독이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중간계층의 부정과 착취는 어쩔 수 없었나보다.
 
이 시계는 초기의 회중시계답게 크기가 지름이 570mm, 높이 295mm로 휴대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시계이다. 당시에는 시계용 유리가 생산되지 않아서 수정 덩어리를 가공하여 유리로 사용하여 유리 두께만 하여도 8mm이며, 현대 시계의 전체두께가 2mm ~ 5mm 정도이니 두께 역시 현대시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시계이다.
 
이 시계는 시간을 조정하거나 태엽을 감아주는 용두(Crown)가 없으며, 태엽을 감아줄 때 또는 시간수정이 필요할 경우 조정용 키(Key)를 이용하여 조정을 한다. 시간조정은 [사진 3]에서 보면 분침 위에 사각형의 기둥이 올라와 있으며 이 사각기둥에 조정용 키를 삽입하여 시간을 조정한다.
 
[사진 3] 시침과 분침 위(중심)에 사각부의 기둥이 나와 있어 조정용 키(Key)를 이곳에 삽입하여 시간을 조정한다.
또한 태엽은 시계의 외부 케이스를 분해한 후 뒷면의 3 시 방향에 조정용 키를 넣어 태엽을 감아주는 구멍이 있다. 외부 케이스와 내부 케이스 모두 순은( 純銀 )으로 제작되었으며, 문자판은 세라믹 처리를 한 후 염화 철을 이용하여 문자판의 숫자를 수작업하였다.
 
시계바늘은 탄소강으로 제작이 되었으며, 바늘의 색상은 온도변화에 의해 반응하는 탄소강의 특성을 이용하여 얻어진 군청색이다. 이 군청색의 시계바늘은 1800년 경 근대시계의 아버지인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Abraham Louis Breguet:1747-1823)가 이론을 정립하여 오늘날에도 브레게 핸드(Breguet Hand:브레게 시계바늘)라고 명칭 한다.
 
브레게 바늘은 현대의 시계 중 까르띠에(Cartier)시계에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파텍 필립(Patek Philippe) 등 최상의 고급 시계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탄소강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이한 군청색상과 강렬한 인상 그리고 녹이 잘 슬지 않는다는 이점 때문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사진 4]를 보면 6시 방향에 작은 돌기가 있는데 이 부분을 12시 방향으로 누르면 시계의 기계(Movement)가 뒤 뚜껑과 분리가 되어 아름다운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품다운 당시에 유행하였던 당초문양을 투각( 透刻 )한 기계전체를 볼 수 있다.
 
[사진 4] 6 시 방향에 기계와 케이스를 분리하는 누름키가 있다.
이 시계의 기계는 윤열부를 덮는 압판(Plate Bridge)과 밸런스를 덮는 압판(Balance Cock for Flat Hairspring), 두 개의 덮개(Bridge)를 가지고 있는데, 두 개의 덮개 모두 아름다운 당초무늬가 투각( 透刻 ) 되어 있다.
 
이 시계의 기계는 밸런스를 보호하는 덮개가 밸런스 전체를 덮고 있는데 당초문양이 투각된 사이사이로 밸런스의 운동이 환상적으로 투영되고 있다.
 
이것은 당시에 유행하였던 시계의 소장자가 원할 경우 언제든지 기계의 작동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제작한 유행에 맞추어 시계의 작동을 환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배려인 것이다.
 
[사진 5] 기계의 윤열부와 밸런스 덮개에는 당초문양이 투각되거나 조각되어 있다.
현대시계에서 가장 예술적이며 고가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스켈레톤 시계 역시 고대와 근대의 회중시계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기계에 조각을 하거나 투각을 하는 문양이나 기법 역시 근대시계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현대의 스켈레톤 시계는 시계의 케이스를 분해하지 않고서도 내부의 기계를 감상할 수 있지만 고대의 시계들은 반드시 내부의 기계를 보기 위해서는 시계의 케이스를 열어야 했으며 이러한 점을 배려하기 위하여 누구나 쉽게 시계의 케이스와 기계를 분리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 시계는 태엽이 발명된 초기의 시계여서 태엽의 탄성이 고르지 못하였던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태엽의 회전력을 고르게 전달하기 위하여 시계기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균력( 均力 )체인을 사용하였다.
 
[사진 6]은 태엽이 전권상태가 되면 태엽의 힘이 최대치가 되어 시계가 빨리 가게 되고, 태엽이 풀리게 되면 시계가 느리게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피라미드 형태의 균력차를 태엽통(Barrel Drum)과 2 번치차(Center Wheel)의 중간에 배열하였으며,
 
[사진 6] 왼쪽의 태엽통과 오른쪽의 균력차 간에 사슬 체인에 감겨져 있어 언제나 시계에 적정량의 에너지를 공급한다.
태엽이 전권상태가 되어 힘이 너무 강하면 균력차의 상부의 좁은 부분이 강한 힘을 이완시켜 적당량의 회전력을 시계 윤열부에 전달하고, 태엽이 많이 풀려서 힘이 약해지면 균력차의 하부인 넓은 부분에 의하여 증가한 회전력이 윤열부로 전달되는 가장 이상적인 에너지 전달방식이다.
 
균력차와 태엽통을 연결하는 체인은 1664년 제네바의 구루엣(Gruet)에 의하여 발명된 균력차용 강철 첸 이 사용되었으며, 1664년까지는 강철 첸 대신에 갓트(Gut:동물의 장, 근육을 건조하여 만든 실, 소나 양 의 장, 근육으로 만든 매우 강한 실, 선)가 사용되어 소형의 시계에는 균력차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방식은 그 후 인류가 가장 갈망하던 경도 발견용의 시계인 크로노 메타에도 사용되었으며, 1949년 미국의 시계제조회사가 형상기억합금인 엥길로우(Engilow)를 발명하여 듀라파워 스프링(Durapower Spring) 이라고 이름지어 공업화하기까지 최고급 정밀시계에 가장 많이 이용된 고정도 시계용 동력원으로 사용되었다.
 
이 시계는 현대의 시계처럼 앵커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앵커의 발명은 1666년 영국인 로버트 후크(Robert Hooke)에 의하여 앙클 탈진기 (Ancre Garnie Escapement)가 발명되었는데 아마 특허의 문제가 있어서인지 1300년 최초의 기계식 시계에서 사용되었던 관형( 寬刑 ) 탈진기를 사용하였으며, 관형탈진기에서 밸런스의 축에 있는 두개의 돌기가 번갈아 가면서 관형탈진기의 성형기어와 직접적인 탈진운동으로 탈진기가 작동한다.
 
[사진 7]의 중앙부에 관형탈진기의 에스케퍼(Escape)가 보인다, 직진형의 에스케퍼와 밸런스가 직각 탈진운동을 하는 충격운동을 위하여 수평회전을 하여야 하는 에스케퍼 치차를 돌리기 위하여 4번 치차(Fourth Wheel)가 사이드 기어로 제작되어 있다.
 
[사진 7] 중앙부에 관형 탈진기의 성형기어인 에스케퍼 치차가 보인다.
시계의 수명에 가장 영향을 주는 혈석(Balance Jewel)은 당시의 혈석 가공이 어려워서이었는지 밸런스 덮개에 구멍보석과 덮보석(Friction and Cap Jewel) 1조(2석)만 있다, 보석은 천연의 보석인 루비를 사용하였는데 보석에 구멍을 내는 기술은 1700년에 니콜라스 피치오(Nicholas Facio)에 의하여 개발되었으며 당시로는 매우 어려운 기술이었다.
 
밸런스의 진동을 돕는 유사(Hairspring)는 네델란드의 천재 시계사 크리스찬 호이헨스(Christian Heygens:최초의 진자시계의 발명가로 알려졌으며, 스스로 만든 망원경을 이용하여 목성의 위성 타이탄을 발견하기도한 천문학자이기도 하다)에 의하여 발명된 수공예품 그대로이다.
 
시계의 구석구석 전체 모두가 시계사의 숨결이 들릴 정도의 정성과 혼이 담긴 예술품이다. 모든 부품과 케이스 모두가 수공예품으로 기계의 내부에 17세기와 18세기에서 유행하였던 문양이 투각되거나 장식이 되어 있으며, 기계의 상부와 하부를 연결하는 4개의 기둥은 마치 거대한 건축물의 기둥과 같이 디자인 되어 있어 당시의 시계 무브먼트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으며 예술품으로써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외부를 장식하는 케이스에 비하여 내부의 기계는 예술품의 극치를 이루고 있으나, 당시의 정밀기술의 취약함이 시계의 하루 오차가 15분에서 20분 정도인 것이 아쉽다. 이때의 시계 대개가 시간의 오차가 심하여 시계의 소장자는 휴대용 해시계를 이용하거나 공공장소의 해시계를 이용하여 수시로 시각을 수정하여야만 하였다.
 
[사진 8] 기계의 상부와 하부를 연결하는 기둥에는 17세기와 18세기에 유행한 당초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시계 제작용 선반의 작동이 선반의 밀-링을 손으로 회전하거나 회전벨트를 연결한 발판을 이용하여 선반을 회전시켜 시계 부품을 제작하였으므로, 정밀하여야 할 부품이 의외로 정도를 벗어난 부품들을 발견할 때 당시의 정밀기술의 수준과 수공예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점이 아쉬운 점이나 그로 인한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는 높아진 것 같다.
 
초기의 휴대시계들은 소장자의 지위와 부의 상징이었으며 최상의 심벌이었다. 이 시계를 소장하였던 소작농민들의 우두머리인 크로프트헤드(Crofthead)는 시간이 날 때마다 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선술집에서 또는 사교장에서 단순하게 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시간만을 보기 위하여 공공의 장소에서 시계를 꺼내지는 않았음을 당시의 기록들을 확인하여 보면 알 수 있다. 근대의 부의 상징 이였던 휴대시계들은 소장자는 대중들 앞에서 시간을 보기 위하여 주머니에서 꺼낸 후 그들은 반드시 시계의 작동을 확인(? 자랑)하기 위하여 전술한 바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시계를 분해한 후 당초문양이 투각된 무브먼트 사이사이로 환상적으로 진동하면서 짹깍 짹깍 거리는 시계소리에 매료되어 자랑스럽게 시계의 작동을 바라보며 흡족해 하였을 것이다.
 
[사진 9]는 역시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동시대의 영국제 시계이다. 이 시계 역시 모든 작동과 원리가 크로프트헤드의 시계와 동일하며 균력체인 원리도 같다. 다만 50년이란 기간 동안 시계의 두께는 절반 이하로 얇아졌으며 크기도 감소하였다.
 
[사진 9] 1750년 경의 영국 런던클락에 의하여 제조된 회중시계이다. 모든 작동과 원리는 전자의 것과 같다. 다만 시계의 크기가 작아졌으며 두께 역시 절반 이하다.
그리고 1715년 죠지 그래함(George Graham:1673-1751)에 의하여 발명된 직진식 탈진기(Enchor Escapement of Dead-Beat Type)가 채용되어 시계의 정확도는 하루 오차 5초 이내로 진일보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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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자대학교 교수 정 윤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