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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 December 21, 2012 | view 8,966
26. 신사의 시계 리피터 「Repeater」 
 
현대인으로 태어나 멋을 안다는 것...
 
생각만 해도 멋들어진 삶이 아닌가...
 
오늘날 현대인들은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정작 멋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날마다 하루 세끼의 식사를 하면서도 음식의 맛을 모르고 식사를 하는 것과 한 숟갈의 된장국을 뜨면서도 맛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이 어떤 계층의 삶인가를 결정 지우는 중요한 테마이다.
 
[그림 1] 바로크시대의 대표적인 뮤지컬 회중시계이다. 사용자가 원하고자 할 때 케이스 상부의 크라운을 누르면 내장된 오르곤에 의해서 음악이 연주된다.
가끔 TV에서 젊은 층의 프로를 보면 유명 연예인들이 특정 시계를 착용하고서 출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종종 잠깐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라 하여도 '도대체 어울리지도 않는데 왜 착용하고 있지.' 하는 생각을 해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아는 관계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고의적인 광고용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 두어 번 유명인이 착용하고 드라마 또는 인기 프로에 출연을 하면 그 특정 시계는 즉각 판매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세태가 아닌가. 어쩌다 세상이 이 모양이 되었을까...
 
자신의 컨셉에 맞지 않는 시계를 유명 연예인이 착용하여 잠시 프로에 출연을 하였다고, 그 시계가 불티나게 팔리고 그것을 착용하였다고 하여 유행에 동참하였다는 사고는 정말이지 정상적인 정신상태라고 판단해 주어야 할 것인가 싶다. 분명 광고를 위해 착용했던 특정프로의 연예인 팔목에 있었던 시계를 연예인이 지속적으로 사랑하고 사용하고 있을까? 우리의 정신세계에 개개인의 사고 속에 주관이라는 정신세계는 사라진 것일까?
 
4년 전 2000년에 필자는 1999년부터 2000년까지 2년 간 지하철을 매일 이용한 적이 있었다. 하루는 퇴근길에 을지로 4가역에서 구의역으로 가는데 앞좌석의 젊은 부부가 두 사람 모두 왼쪽 팔을 유난히 앞으로 뻗고 있어서 '저 사람들 불편하게 왜 저런 자세로 않아 있지?' 생각하였다. 당시 필자는 외국의 한 서적을 필독하여야 하였으므로 출퇴근 때에 이 책을 읽기 위해서 지하철을 이용하였다.
 
여러 정류장을 지나치면서도 그들 부부는 통로를 향한 손을 치울 줄 몰랐다. 책을 읽어야할 필자는 그 장면이 너무 거슬려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관찰한 필자는 쓴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젊은 부부의 뻗은 왼손에는 당시 가장 유행했던 까르띠에 산토스(Cartier Santos)가 있었다 그것도 방금 구입한 듯한 따끈따끈한 신품인 것 같았다. 주변을 돌아본 필자는 갑자기 서글픈 상념이 밀려들었다. 불행하게도 젊은 부부의 산토스 시계를 알아본 사람은 유일하게도 나 하나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그림 2] 그림 1 의 뮤지컬 회중시계의 내부 무브먼트이다. 두 개의 옥타아브 오르곤 건반이 보인다.
언젠가 한 고객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해 가면서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A급의 다이아몬드가 아닌 C급의 상태를 원하였다. 다만 칼라와 프로포션만 좋으면 된다는 것이다. 칼라와 프로포션만 좋으면 그 다이아몬드는 내용은 어떻든 간에 좋은 광채를 반사할 것이다. 감정사가 현미경이나 루페로 세밀히 관찰하지 않는 한 프로포션이 나쁜 상태의 A급의 다이아몬드보다도 매우 훌륭한 광채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 마누라가 다이아반지 끼고 다니는데 누가 현미경으로 들여다봅니까?", "선생님, 루페나 현미경 없이 이 다이아반지 A급인지 C급인지 알 수 있어요?" 라고 말하였다. 필자는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맞습니다. 맞아요. 가장 현명한 결정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매우 실리적이며 현면한 분이라서 가끔 생각이 난다. 그 분을 생각하면 오래 전 병영생활 중에 읽은 시가 생각난다 "아득히 먼 동양에서 나의 뜰에 옮겨 심어진 은행잎은 현면한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라고 시작되는 괴테의 시 은행잎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림 3] 앙리 선장(Henry Captain)의 리피터 회중시계이다.
1500년 경 독일에서 휴대용 시계가 만들어지면서 시계는 권력의 상징이자 부의 상징으로 그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초기의 시계들은 동시대의 최상의 기능과 기술이 집약되었으며, 예술과 장인의 혼에 의해서 탄생되었다. 또한 최고의 시계 제조인이 만든 시계의 인기는 부르는 것이 값이 되는 고가에 거래되었으나 고객을 찾지 못한 시계는 없었다는 기록을 볼 때에 상류층의 시계 사랑은 끝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중세와 바로크시대에서는 고가의 시계 또는 고가의 과학장비를 소유하는 것이 곧 신분의 상승을 의미하였으므로 이 시대에 많은 예술성이 첨가된 과학장비와 최상급의 시계들이 제조되었다. 바로크시대의 절정기에는 복잡하고 여러 기능이 첨가된 복잡성 휴대용 회중시계가 제조되기 시작하면서 시계의 성능이 주요한 관건이 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상류층의 잦은 모임과 사교클럽의 활성화는 남들이 소장하지 않는 즉 자신만의 고급 회중시계를 소장하기 위한 부유층의 사치로 인해 상대적으로 시계의 고급화와 복잡하고 여러 기능이 첨가된 회중시계의 성능 발전을 가속시켰다.
 
1687년 에드워드 바로우(Edward Barlow:1639-1719)와 다니엘 콰르(Daniel Quare:1648-1724)에 의해서 상류층을 자극시키는 매혹적인 시계가 발명되었다. 다니엘 콰르는 시계에 분침(Minute Hand)을 첨가시킨 시계 제조인 중에서도 빛나는 업적을 남긴 분이다. 에드워드 바로우는 현대에서도 응용되어 벽 탁상용 시계에 이용을 하고 있는 락크 앤드 스넬(Rack & Snell)식 타방장치를 발명하여, 매 시간 타종하도록 벽 탁상시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여 제조, 시계를 보지 않고서도 시간을 알 수 있는 편리한 시계 타방장치의 발명자다.
 
이 두 분은 공동으로 회중시계에 당시의 시계 유행에 충격적인 장치를 첨가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여 1687년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 이들은 발명품의 광고를 미리 하지 않고 상류층 모임에서 정적이 흐르는 조용한 순간에 자신들이 발명한 시계의 케이스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버튼을 살며시 누르고 있었다.
 
[그림 4] 앙리선장의 리피터 회중시계의 내부 기계이다. 무브먼트 가장자리에 공이 보인다.
'딩동댕동' 하는 웨스쳐민쳐 사원에서나 들을 수 있는 고요하고도 신비스러운 음향이 사교장 전체를 숨죽이게 하였다. 가느다란 음향이면서도 고요하고 마치 일곱 무지개 색채를 발산하는 듯한 음향이었다.
 
모두들 '어디에서 나는 소리지?' 하며 서로가 묻는 듯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때 또 한곳에서도 '딩동댕동' 하는 간략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음향이 울리고 있었다.
 
멋을 아는 신사의 시계 리피터 회중시계는 그렇게 세상에 등장하였다.
 
버튼을 누르면 그때 당시의 시간을 알려주는 간략한 2음조 또는 4음조의 음향( 音響 )으로 당시의 시간타종을 울린다. 작은 회중시계에서 얻어져야 하는 음향이므로 최상의 금속공학과 가공기술이 있어야만, 이 작은 회중시계케이스 안에서 얻어지는 공명( 共鳴 )의 음향은 최상의 품질이 보장되었다.
 
더구나 회중시계 케이스 내부에는 시계장치가 당연히 내장되어 있으며 타종( 打鐘 )을 하는 타방장치는 시계무브먼트의 1/4 정도의 공간에서 제조가 가능하지만, 음향을 만드는 4개의 공(Gong)과 이 공에서 얻어지는 소리를 증폭시킬 수 있는 공명의 증폭효과와 또한 시계 케이스의 재질과 강도 그리고 공에서 얻어지는 음색의 음향 효과는 무브먼트와 케이스 사이 공간에서 얻어지는 공간의 음향예술이 보장되어야 하였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벽시계(Wall Clock)와 탁상시계(Table Clock) 그리고 그랜드파더클락(Grand Father Clock)의 타종소리 또는 오르곤의 건반소리와 챠임(Chim)소리는 공명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나무(Wooden)재질로 케이스 제작이 가능하므로 별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회중시계(Pocket Watch)의 케이스는 나무로 만들 수 없을 뿐 아니라 나무로 케이스를 만든다 하여도 작은 공간에서 원하는 공명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림 5] 리피터와 크로노그래프 기능이 첨가된 최상의 회중시계이다. 케이스 가장자리에 크로노그래프 버튼과 리피터 버튼이 있다.
그러나 에드워드 바로우와 다니엘 콰르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다. 금속공학과 수학적인 계산에 천재인 에드워드와 타방장치의 발명자이며 음악에도 재주가 있었던 다니엘은 회중시계 무브먼트와 케이스 사이의 2mm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천상의 음악이라는 천사의 타종연주소리를 창조하였다.
 
더구나 이 리피터 회중시계는 시계를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고서도 케이스의 버튼을 누르면 그때의 시간을 알려주는 챠임벨 소리가 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소장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모임장소에서 버튼을 눌러서 아무런 소리도 없고 더구나 음향장치가 없는 단순한 회중시계의 소장자들을 열 받게 하였다. 더구나 당시의 분위기는 고가의 과학장비 또는 고급품의 시계를 소장하는 것이 곧 신분의 상승을 의미하던 때 이었으므로 귀족층과 부유층들을 자극한 것은 당연하였다.
 
[그림 6] 리피터와 크로노그래프 기능이 첨가된 회중시계의 내부이다. 혼란할 정도의 복잡성 기계임을 알 수 있다. 기계 가장자리와 케이스 외벽사이에 음향을 만드는 공이 보인다.
그러나 리피터 회중시계의 음향은 탄소강으로 만들어진 공의 제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이 공의 음향을 증폭 하여야 하는 케이스의 재질과 가공이 매우 어려워 다량 생산은 당시의 기술 수준의 분위기를 보아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사람의 시계사가 천수를 다하는 생전에 그의 가족 또는 제자들과 함께 시계를 생산할 수 있는 숫자는 5,000개에서 6,000개가 안 되는 시대에 리피터 기능이 첨가된 시계를 만드는 것은 비록 당대 최고의 천재 시계사인 에드워드 바로우와 다니엘 콰르 두 가족이 밤새워 일을 한다하였어도 폭주하는 수요를 충족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에서도 시계와 인연이 있었나보다. 중학교 2학년 때에 친구의 집에서 신문을 보았을 때 독일에서 매 15분마다 챠임이 울리는 시계가 발명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에는 매 시간 15분 30분 45분에 각각 길이와 다른 음향의 챠임이 울리며 정시에는 이 모든 음향이 조화롭게 울린 후 타종을 한다는 기록을 본적이 있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필자가 시계박물관을 꿈꾸면서 시계를 수집할 때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던 시계가 바로 웨스쳐민쳐 챠임 시계였다. 또한 필자는 가장 아름다운 음향을 가지고있는 시계들. 바로 웨스쳐민쳐 챠임 시계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처음 이 시계를 수집할 때 양도자가 100년도 넘은 시계라고 소개하였을 때 필자는 이 시계는 65년 대 이후에 제작된 시계입니다. 라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바로 중학교 2학년 때에 친구의 집에서 읽은 신문기사가 또렷하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한참을 나를 보고 있었으며, 나는 독일 시계의 특성인 무브먼트에 기록된 생산년도를 분해하여 보여주었다.
 
[그림 7]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초기의 챠임탁상시계이다. 각각 다른 음색을 나타내는 3개의 나선형 공이 인상적이다.
그 후 많은 시계를 만나고 시계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미 300년 전에 리피터 회중시계가 발명되었음을 알고서 바로크시대의 시계 제조인들의 시계제조기술에 찬사를 금할 수가 없었다. 또한 시간과 음악을 넘나든 리피터 회중시계를 제조하게 만든 중세와 바로크시대 멋쟁이 신사들의 멋스러움에 아련한 그리움과 부러움이 밀려온다.
 
현대의 멋쟁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의 주머니 속에서 느껴지는 18금 케이스의 감촉과 미세하게 4진동을 하는 시계의 째각거리는 진동 소리에서 탄생되는 리피터 챠임소리를 들으며 지그시 눈감으며 일어서는 바로크시대 멋쟁이 신사들의 재스쳐를 우리들은 그때의 분위기를 느끼며 이해할 수 있을까...
 
도시의 지하를 무자비하게 질주하는 지하철과 질식하듯 막혀버린 교통지옥, 물밀 듯이 밀려오는 인터넷 정보홍수와 공중파에서 뿌려대는 광고들 속에서 어느 특정 연예인이 착용하였다고 하여 광적인 애착과 자신의 주체를 상실함과 동시에 인간 본연의 심성의 밸런스를 잃어 가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여유를 갖고서 리피터 회중시계의 버튼을 살며시 누르는 바로크의 멋쟁이 신사들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여유와 정말 멋을 알고 살아갔던 그들의 멋스러운 삶을 이해하는 현대의 멋쟁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림 8] 1억을 호가하는 Audemars Piguet 사의 제품 John Schaffer 모델. Minute Repeater, Perpetual, Skeleton, Manual Winding 리피터 손목시계이다.
오늘날 손목시계로 재현된 리피터 손목시계의 가격대가 1억을 호가하는 시대에서 비록 바로크시대의 멋스러움에 쉽게는 다가서기에는 어렵겠지만. 어떤 종류 또는 어떠한 디자인의 시계가 자신의 컨셉에 어울리는가를 알고서 시계를 착용하는 현대인이 진정한 이 시대의 멋쟁이들이다.
 
아무 생각 없이 특정 연예인이 착용하고 있으니까...
 
또는 가격이 비싸고 화려하니까...
 
명품 브랜드이니까, 내가 착용하고 다니면 나도 이 시대의 유행에 동참하고 있다는 바보스러운 생각은...
최고의 지성을 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올바른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American Certified Master Watchmaker
대한민국 명장
고급 시계사
시계 산업기사
부산여자대학교 교수 정 윤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