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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 November 21, 2012 | view 6,907
2. 현대인이 사랑하는 복고풍시계 
 
현대의 시계를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는 가끔 우리가 정말 현대의 시계들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고민하였을까? 왜 또 다시 고대의 시계들을 모방한 복고풍의 시계가 얇고 세련미가 넘치는 현대시계보다 소비자들의 인기와 사랑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이유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았는가?
 
소비자들의 취향이 얇은 손목시계에서 두껍고 무거운 고전전인 복고풍의 시계로 돌아선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고대의 시계 발달사 중에 휴대시계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16세기 초반으로 되돌아 가보면 알 수 있다.
 
시계의 유행과 소비자들의 욕구는 시계를 고정도화 시키고 인간의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이며,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게 한 이유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시계를 인간이 손목 위에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고정도의 정확성도 있겠지만 케이스의 아름다움과 신선한 유행, 그리고 소비자 각자의 욕구를 충족하여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시계는 언제부터 인간의 손목에 자리를 잡았을까? 최초의 손목시계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유감스럽게도 최초의 손목시계라고 결정할 수 있는 손목시계는 현존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손목시계가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현재에도 영업을 하고 있는 드로·루쇼(Droz & Lechot) 상회의 출납부를 보면 1790년 손목시계에 관한 기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까지는 이 기록이 손목시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며 정확한 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손목시계에 대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약 500년 전의 독일의 시계역사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손목시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유와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시계 케이스의 재료 및 구조 등의 발달을 과거의 역사를 추적하여 알아둘 필요가 있으므로 휴대시계가 만들어져 시계 케이스가 필요하게 된 1500년 경의 시계가 만들어진 시대로 되돌아 가보기로 하자.
 
1498년에 독일의 린덴브르그에서 피터헬레인에 의하여 태엽이 발명되었고, 이로 인하여 휴대용 시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태엽의 발명으로 인하여 시계는 탁상형의 것에서 목에 걸고 다니는 형 그리고 회중시계 라는 것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사진 1] 16세기 중반에 독일에서 제작된 원통형의 휴대시계이다. 1회의 태엽감기로 16시간을 작동하였으며, 당시 시계의 정확성이 적어 시침만 작동한다. 분침은 그 후 100년 후인 1680 ~ 1690년 경 다니엘 콰르(Daniel Quare:1648-1724)에 의하여 첨가되었다.
초기의 휴대용 시계는 그 규모가 상당한 크기여서 양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현존하고 있는 당시의 휴대용 시계를 독일의 린덴브르그 박물관에서 보면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초기의 휴대시계는 란(卵:조류의 알)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나보다. 그 이유는 당시의 기록을 보면 1500년 경에 독일에서 만들어진 휴대시계를 린덴브르그의 란( 卵 )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그러나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실물은 란의 형태는 아니고 원통형의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당시의 시계에 크리스탈 유리가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둥근 란( 卵 ) 형태의 뚜껑이 바늘과 문자판을 보호하기 위하여 덮개로 사용되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문제의 뚜껑이 분실되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해보았다.
 
아무튼 [사진 1]의 시계는 휴대용이었지만, 먼지 등 외부로부터 침투하는 물, 습기, 충격 등에 무방비 상태였으며, 휴대방법으로는 목에 걸고 다니거나 휴대용 포터블처럼 어깨에 매고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16세기 후반에 독일에서 제작된 휴대시계에 란( 卵 )의 형에 가까운 시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2]의 시계는 16세기 후반에 독일에서 제작된 타원형의 시계이다. 이 시계 역시 목에 걸고 다닐 수 있게 제작되었으며 금, 은, 놋쇠와 에나멜이 사용되었다. 길이는 84mm이며 넓이는 51mm, 두께는 40mm이다. 케이스 바닥에는 성화와 요정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제작자는 Avg Buschman이다. Avg Buschman 집안은 16세기, 17세기에 대대로 시계를 제작하였던 유명한 집안이다.
 
란( 卵 )의 디자인으로 된 휴대용 시계로는 16세기 말의 이 작품이 현존하고 있으므로, 16세기 초의 린덴브르그의 란( 卵 ) 역시 이런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16세기 초의 작품으로는 [사진 1]의 원통형의 것만 남아 있어서 확실한 것을 알 수 는 없다. 또한 16세기 당시의 시계는 1회 태엽감기로 15 ~ 16시간만 작동을 하였으므로 하루에 두 번을 태엽을 감아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진 2] 16세기 말의 독일의 시계제작 가문인 Avg Buschman 작품이다. 이 시계 역시 시침만 작동한다.
처음 기계시계가 만들어진 것은 1300년 경 이태리에서 공공건물에 설치하면서부터였는데, 이때의 시계는 대중 혹은 복수의 사람들의 공유의 것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시간 역시 공동으로 관리하였으며 하나의 대형건물의 시계로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공동의 소유물이였다.
 
그러나 휴대시계가 발명되면서부터 공유의 것에서 개인의 것, 즉 개인을 위하여 시간을 알리는 것으로의 기능이 변질되었으며, 휴대시계가 발명된 초기에는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당연 그것들은 일부의 권력자나 부호들의 것이었으며, 시계 또한 그들의 신분의 상징(Status Symbol)으로 되어 오늘날에도 고급시계가 신분의 상징이 된 기원은 초기의 휴대시계에서부터였다.
 
따라서 초기의 휴대시계들은 그 시대의 정수를 집약시킨 최고의 장식품으로 만들어졌으며, 시계용 유리가 사용되기 이전의 시계들 중에는 천연의 수정 덩어리에 구멍을 파고서 기계를 집어 넣은 것도 있다.
 
내부장치로는 시타( 時打 시간을 알리는 타종장치 ) 장치와 달이나 태양의 출입을 알리는 루나워치(Lunar Watch)가 주로 만들어졌으며, 오늘날과 같은 시계기능을 가진 것은 극히 적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당시의 모든 기능과 기술을 집약시킨 휴대용 시계들도 시간의 오차가 너무 커서(하루 오차가 적게는 15분에서 많게는 2시간 정도의 오차가 있었다) 시각을 수시로 해시계에 맞추어야만 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시계들은 발명의 주된 동기가 알람장치나 교회의 자동 시타장치, 또는 천체운행의 표시장치를 목적으로 개발하였으므로, 당시의 시계는 Horologium으로 불리었거나 Clock으로 불리었다는 것은 자동종타장치( 自動鐘打 裝置 )라는 뜻을 지녔으며, 또한 귀로 시간을 듣고 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현대와 같이 시간을 눈으로 보아서 안다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 아는 시대였다.
 
[사진 3] 1700년 경에 제작된 휴대용 루나워치(Lunar Watch). 우측 1시와 2시 방향에 천체운행 표시장치가 있다.
16세기 경의 휴대시계로서 현존하고 있는 모든 시계의 케이스(Case)는 청동 (Bronze)에 금도금을 한 것이다. 유럽의 고문서들과 귀족들의 재산 목록들을 보아서 알 수 있지만 최상의 부유층의 시계에 금이나 은을 사용한 기록들은 있지만 특별한 귀족을 제외한 다른 기록들에는 청동에 금도금을 하는 것이 규칙으로 정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무슨 이유에 시계 케이스는 청동에 금도금을 하여야 한다는 규칙을 정하였을까?
 
그것은 시계 케이스에 금을 사용하여도 기계를 제작하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비용으로 치자면 고가의 기계(Movement)에 비하면 케이스에 드는 금의 비용은 보잘 것 없기 때문에 당시의 길드(Guild)제도가 이것을 거부하였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프랑스의 브로와에서는 금세공사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시계사가 금을 사야 할 경우 금세공사를 통하여 구입하되 그들의 마크가 각인된 것을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건이 규정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상인들을 보호하는 길드제도이며, 이 길드제도에 의하여 시계사가 금을 구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므로 초기의 휴대용 시계의 케이스가 다른 용도로 용해되어 사라지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를 보기도 하여 현재까지 약간의 고대의 시계들이 현재까지 잔존할 수 있었던 큰 원인이 된 것이라고 필자는 판단하고 있다.
 
초기의 휴대용 시계들은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목이나 어깨에 가죽끈이나 사슬로 느러뜨린 것이다. 그러므로 시계의 형태나 장식에 많은 변화를 낳게 되었으며, 그 후 영국에서 청교도 활동이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시계의 장식은 1625년 경부터 간소화되기 시작한다.
 
[사진 4] 1600년 경의 휴대용 해시계이다. 고전적이면서도 신선한 현대감각을 느끼게 하는 휴대시계이다. 길이 60mm, 넓이 50mm, 높이 20mm이다.
최초의 휴대시계가 란( 卵 )의 형태였는지, 마스크 볼의 둥근 형태였는지, 아니면 원통형의 드럼 형태였는지는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초기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둥근형의 휴대용 시계가 6개만 현존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Jacques de la Garde의 1551년의 작품이 보존되어 있다.
 
[사진 5]는 휴대시계에서 양복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회중시계로 전환되는 시기에 만들어진 작자 미상의 걸작품이다. 1650년 경 프랑스에서 제작된 원형의 시계로 재료는 금, 놋쇠, 에나멜이 사용되었다. 직경 60mm, 두께 22mm로 소형화 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케이스에는 3명의 사랑의 요정이 여신을 향하여 꽃을 바치고 있는 그림이 있다. 뚜껑의 바깥쪽에는 큐피드가 거울을 바쳐주고 하인의 머리를 빗겨주는 비너스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안쪽에는 여신과 아도니스가 부드럽게 서로 안아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시계 역시 시침만 작동을 하고 있으므로 다니엘 콰르에 의하여 분침이 첨가되는 1680년 이전의 작품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사진 5] 작자미상의 1650년 경에 프랑스에서 제작된 회중시계. 현존하는 초기의 회중시계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초기의 휴대시계들은 태엽의 발명으로 인하여 휴대할 수 있는 시계로 전환되었듯, 이 휴대시계는 공공의 대형 탑시계(혹은 사원들의 시계)에서 개인의 소장품으로, 즉 공유의 시간에서 개개인의 시간으로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시계 제작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0년 이상의 세월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수작업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 가격은 일반 서민은 구입할 수 없는 고가로 거래되었으며, 당연히 주문 제작하여 구입하였다.
 
기계를 제작하는데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았으므로 시계 케이스를 만드는 작업은 부수적이였으나, 자연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시계 제작은 기계를 만드는 시계사와 케이스를 제작하는 장인, 그리고 문자판과 케이스에 조각이나 그림을 그려 넣는 화가와 조각사가 각각 작업을 하였다. 시계역사에 가장 빛나는 업적을 쌓은 영국의 시계사 존 해리슨 역시 문자판과 케이스의 제작을 위하여 도안은 직접하였으나 그 작업은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대의 휴대 시계들은 시계 기계를 만드는 시계사, 케이스를 만드는 장인, 화가, 조각사 등의 당대 최고의 장인들의 정신과 혼이 깃들수밖에 없었으며 당연히 인류역사에 길이 남을 최상의 예술품으로 탄생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또한 한 개의 시계를 완성하기 위하여 많게는 10년의 시간을 소진하는 등 당시의 최상의 기술과 예술의 혼이 집약되었으니 아무리 시계에 문외한이라 하여도 고대의 시계에 매료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현대인들이 유행과 현대의 메카에 교육되고 길들어졌다 하여도 고대의 아름다운 예술품을 사랑하게 되고 애착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은 아닐까...
 
우리 인간의 가슴속에는 고대의 부의 상징이며 권력의 상징이었으며 귀족들의 최상의 신분의 상징(Status Symbol)이었던 고전의 시계인 복고풍시계에 애착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American Certified Master Watchmaker
대한민국 명장
고급 시계사
시계 산업기사
부산여자대학교 교수 정 윤 호